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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번호 : 19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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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사의 여행 /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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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정보
      전자상거래 상품정보 제공 고시
      도서명 선교사의 여행
      저자, 역자, 출판사 함제도 / 이향규, 고민정, 김혜인 / 가톨릭출판사
      크기 145mm X 210mm
      쪽수 248쪽
      제품 구성
      출간일 2020-08-13
      목차 또는 책소개 상세설명참조
      브랜드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고객평가 0건  ★★★★★ 0/5
      출판사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글쓴이, 옮긴이 함제도 / 이향규, 고민정, 김혜인
      크기 145mm X 210mm
      쪽수 248쪽
      출간일 2020-08-13
      출고예상일 서원운영일 기준 36시간 이내 발송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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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한국에서 60년간 선교사로 살아 온 메리놀회 (미국 가톨릭 외방전교회) 함제도 신부(Fr. Gerard E. Hammond)의 생애를 기록한 것이다.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함 신부는 1960년에 한국에 와서 30년동안 청주교구 사제로 지내면서, 가난했던 남한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1989년 이후 메리놀회 한국지부장으로 일하면서, 지난 30년 동안 가난하고 아픈 북한사람들을 위해 60여 차례 방북하는 등 지금은 그들과 ‘함께’ 한다. 평생 선교사로 산 그가 북한사람들을 대하는 삶의 태도는, 훗날 우리가 그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인도적 지원에 참여하는 그가 지금 북한에서 ‘선교’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관점은 북한 선교에서 정작 무엇이 중요한 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나아가 지난 60년 동안, 경제적으로 풍요해진 남한에서 우리가 정작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이 작업은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의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가톨릭 구술사 채록 2019” 프로젝트의 결과로, 2019년 8월부터 12월까지 20시간이 넘는 인터뷰 내용을 기초로 세 명의 연구자가 함신부의 구술내용을 재구성하여 정리하였다. 

       

      [책속에서]

      어디 선교지로 갈 지는 부제품을 받을 때 결정하고 신청할 수 있어요. 나는 한국에 지원했어요. 장익 주교님이 꼭 한국에 가야 한다고 강조했던 영향이 컸지요. 3지망까지 쓸 수 있었는데 1지망을 한국으로 썼어요. 선교지는 사제품을 받기 전에 알게 돼요. 나는 1960년 4월 17일에 한국 임명을 통보받았어요. 당시 그걸 집에 전화로 알려줄 수 있었는데 식구들이 모두 제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는 한국으로 가요.” 하니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울었어요. “도대체 왜 거길 가니?”라고 하셨죠. 할머니는 한국 하면 전쟁만 생각났나 봐요. 전쟁 난 곳에 도대체 왜 가야 하냐고. 아버지는 아무 말씀 안 하셨어요.

      -45-47쪽, 1부 삶은 기차여행입니다.

       

      “제가 최선을 다 해 보겠지만, 여기에 오래 있지는 못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필라델피아 교구로 돌아가고 싶을 것 같아요. 제가 있을 곳은 거기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코너신부님이 물었어요.“ 운전면허증이 있니?” “네” “그럼 내일 나를 장호원 성당에 좀 데려다 줄 수 있겠니?” 

      장호원본당에는 2층으로 된 사제관이 있었고 메리놀 신부님 세 분이 계셨어요. 코너 신부님은 제게 밖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어요. 그리고 혹시 사람들이 다가와서 말을 걸면 이야기를 나눠 보라고 했어요. 거기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아이들이 저한테 다가왔어요. 아이들이 아주 가깝게 다가오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이야기는 충분히 나눌 수 있는 거리였죠. 그때가 아마 아이들과 “눈을 먹을까? 코를 먹을까? 입도 먹을까? 왁!” 게임을 처음으로 했을 때일 겁니다. 아이들 모두 소리를 지르며 도망갔어요. 물론 얼굴에 함박웃음을 띤 채요. 그러고는 다시 제 곁으로 살금살금 다가왔어요. 나는 편안해졌어요.

       코너 신부님과 트럭을 타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온통 흙길이어서 네 시간 넘게 걸렸어요. 차 안에서 신부님께 오늘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어요. 코너 신부님이 저를 돌아보며 “신부님, 신부님은 이제 비로소 로맨스를 시작한 겁니다.” 하고 말씀하셨어요. “로맨스요?”

       제 로맨스는 그렇게 시작되었답니다.

      -174-175쪽, 4부 선교사의 자리, 선교사의 마음

       

       당시 성당에 주머니를 달아두거나 독을 달아두면 신자들이 쌀 한 숟가락 보리 한 숟가락을 아껴서 거기에 보탰어요. 그 자루나 독은 기적처럼 채워져서 꼭 필요한 사람에게로 돌아갔죠.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 몫을 조금씩 조금씩 내놓은 거에요.

       그 시절 저는 장례식이 제일 힘들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무력감을 느꼈거든요. 아이가 넷이나 되는 엄마가 이제 자기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물었어요. “남편은 죽었고 쌀독은 비었어요. 신부님, 이제 뭘 해야 할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봅시다.” 하고 대답했지만 말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어요. 제가 어떻게 이 가족의 앞날을 책임지겠어요, 제가 어떻게 이 아이들을 먹일 수 있겠어요. 정말 모르겠고 곤혹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뭔가 “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어떤 일이 벌어져요. 가난한 사람들이 조금씩 쌀을 모으는 것처럼 말입니다.

      -198쪽, 4부 선교사의 자리, 선교사의 마음

       

       나는 북한 사람들한테 개인적인 걸 전혀 묻지 않았어요. 같이 차를 타고 가다 보면 그분들이 무엇을 물어볼 때도 있었는데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제가 같은 질문으로 되묻지는 않았어요. 그게 도움이 되는 소통방법인 것 같아요. 그들이 어디 사는지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묻지 않았지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 조금 친해지면 몇 명은 자기 가족사진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들 스스로 말하고 싶어 할 때 듣는 것,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152쪽, 3부 동무, 동지, 신부 선생, 할아버지

       

       어느 날 제가 거기 사람들에게 “나중에 언제 기회가 되면 서울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하고 초대했어요. 그랬더니 “신부님, 걱정하지 마세요. 꼭 찾아갈께요. 그때는 우리가 먹을 건 우리가 잘 챙겨갈께요.”하고 진심으로 대답했어요. 우리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고 그렇게 말한 거에요. 

      -158쪽, 3부 동무, 동지, 신부 선생, 할아버지

       

       장충성당을 교회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건 무너지기 아주 쉬운 약한 교회이겠지요. 그렇다고 그게 그곳에 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될까요? 지금 단계에서는 그게 교회인지 아닌지를 논리적으로 판단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 사람들의 신앙이 살아날지 죽을지, 신자들이 어떤 종류의 신앙을 갖고 있는지, 뭐 이런 것들은 나중에 차차 드러나게 될 거에요. 그러나 지금처럼 막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자료나 증거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 (compassion)에 초점을 맞추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180쪽, 4부 선교사의 자리, 선교사의 마음

       

       우리 청주교구에 북한에서 온 피란민 남자가 있었어요. 그분은 전쟁통에 가족들을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혼자 내려왔다가 결국 돌아가지 못했지요.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재혼을 하고 싶다면서 주교님을 찾아왔답니다. 교회법상 한 번 교회에서 혼배성사를 한 사람은 재혼할 수 없지요. (......) 그때 파 주교님은 이 일을 교황청에 문의하지 않으셨어요. 그분은 언제나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신자들은 우리가 상식에 근거해서 판단하기를 기대해요” 

       상식에 근거해서 판단하는 것은 어떤 일이 “안되게 하기 위해서” 하지는 않아요. 어떤 일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하지요. 장충성당의 미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교회법에서만 근거를 찾거나 우리 체제에 맞춰서만 보지 말고 상식에 근거해서 방법을 찾아야죠. 우리는 북한 사람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서 그곳 신자들의 영혼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죠.  

      -183쪽, 4부 선교사의 자리, 선교사의 마음

       

       제가 지금 북한에 가는 건 가톨릭을 전교하려고 가는 게 아니에요. 아픈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 가는 것이죠. 북한에서 우리와 함께 다닌 수행원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들은 사제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죠. 그들은 사제를 원하지 않았어요. 그때 제가 “나는 당신과 똑 같아요. 자 보세요, 당원으로서 당신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인민을 섬기는 거 아닌가요? 똑 같아요. 저는 공산주의자는 아니에요. 하지만 인민을 위해서 봉사하지요. 사람들을 섬깁니다. 사실 우리는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거에요.” 실은 그분들 없이는 우리도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없고 우리 없이는 그분들도 마찬가지에요. 서로를 필요로 하는 거죠. 그래서 전 ‘함께’라는 표현을 주로 써요. “그러니까 함께 합시다.”

      -197쪽, 4부 선교사의 자리, 선교사의 마음

       

       삶은 기차여행 같습니다. 정차하는 역이 많고 행로가 자주 바뀌고 온갖 사건이 일어나는 그런 여행 말입니다. (......) 이 여행은 기쁨, 슬픔, 환상, 기대, 만남과 이별로 가득합니다. 기차에서 만난 승객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함께 가게 된다면, 서로 사랑하고 도와준다면, 그건 참 좋은 여행이 될 겁니다. 

      -53-54쪽, 1부 삶은 기차여행입니다.  


      추천사 (이기헌 주교) 

       

      프롤로그 

       

      1부 삶은 기차여행입니다

      가족 • 월든 자비 학교 • 

      메리놀 소신학교 •  

      메리놀 신학교 • 선교지, 한국 • 

      한국으로 가는 긴 여행 

       

      2부 선교사의 로맨스

      도착 • 한국어 수업 • 첫 성탄 •   

      청주교구 발령 • 5·16 군사쿠데타 • 

      성심고아원 • 파 주교님 • 

      북문로본당 주임신부 • 

      수동본당 주임신부 •   

      청주교구 총대리 • 

      가정 방문 • 교황 훈장 서훈 • 

      괴산본당 주임신부 •   

      절망과 무력감 • 

       

      3부 동무, 동지, 신부 선생, 할아버지

      메리놀회 한국 지부장 • 북한 방문 • 

      장충성당 미사 • 북한을 지원하는 마음가짐 • 유진벨 재단의 결핵 환자 지원 사업 •  

      내가 만난 북한 사람들 • 

      북한 선교의 소망 

       

      4부 선교사의 자리, 선교사의 마음

      두려움 • 십자가 • 연민 • 떠남 •   

      야전 병원 • 존엄과 존중 • 어머니 • 

      남은 일 

       

      에필로그

      당신은 진보입니까, 보수입니까? (이향규)•

      미국인 선교사 할아버지의 마음을 가늠해 보다 (고민정) • 

      선교사의 발자취에 손을 얹어 보았다 (김혜인) •

      당신은 어떤 종류의 선교사입니까? (강주석신부)•

       

      함제도 신부가 선교사로 살아온 길 


      구술  함제도  미국명 제라드 해먼드 신부(Fr. Gerard E. Hammond).  

      가톨릭 외방선교회 가운데 하나인 메리놀회의 원로 선교사. 1933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아일랜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메리놀 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뉴욕 메리놀 선교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60년 첫 선교지로 한국에 온 뒤 청주교구 북문로·수동·괴산 성당에서 주임 신부로 일하고 청주교구 총대리 신부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1989년 메리놀회 한국 지부장에 임명된 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사업, 특히 결핵 환자 지원 사업에 힘썼다. 여든여덟의 원로 사제는 지난 60년 동안 남북한을 가로지르는 영적 여행을 들려주며, 선교사로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삶으로 보여 준다.

       

      기록·정리 

      이향규 

      서울대학교 교육학과에서 북한 교육 역사사회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북한대학원대학교, 한국교육개발원, 한양대학교 등에서 연구하고 가르쳤다. 2016년에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한 뒤 이주민의 삶과 분단 문제에 대해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는 『후아유』(2018), 『영국 청년 마이클의 한국전쟁』(2019) 등이 있다.

       

      고민정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 석사. 전 미국 우드로윌슨센터 연구원(KF Junior Scholar). 역사학과 사회학을 공부하다 한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북한학과에 왔다. 북한과 관련된 일이라면 국내외 어디든 찾아다닌다. 연구로는 「북한의 소련 담론 변화」, 「소련의 북베트남과 북한 원조 비교」 등이 있다.

       

      김혜인

      동국대학교 북한학과에서 북한 매체 텍스트 분석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현재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꿈 많던 20대 초반, 책장에 북한과 평화에 대한 책이 많아진 것을 느끼고 북한학 공부를 시작했다. 글 안에 신앙과 지식을 함께 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혼란스러운 남북 관계 상황에서도 밝은 등대 같은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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